개회예배
이번 수련회 주제가 정해지면서 목사님께서 취지로 주신 글이 있다. '교회가 회복되는 과정 속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기를 각오하는 청년이 되기를 원한다. 나르시즘에서의 탈출, 자기애의 탈출,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수련회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수련회 기간동안 열중하여 말씀 듣고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열심으로 기도하여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길 바란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수련회는 공간과 시간과 환경 모든것이 하나님 앞에서 열려있다. 그동안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우리 안에 채워져야 할 것들이 채워지지 못하고 유실되었다. 지금은 믿는 사람들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기본을 찾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내 안에 어떠한 생각이 차있고 무엇을 따라 가고 있는지 나에게 어떠한 것이 소망인지를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이다. 신앙생활은 신앙과 생활의 합성어로 생활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고 현실적이나,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고 비현실적이다. 내 안에 하나님을 따라 가는 '신앙'과, 세상에서 삶을 사는 '생활'이 공존하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쉽지 않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목적과 방향성이다. 목적과 방향성이 어디로 향해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신앙과 생활이 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안에 있는 두가지 속성 중 어떤것에 무게를 둘것인가? 그 결정에 결코 중립은 없다. 어디에 삶의 방향과 목적을 둘 것인가?
개회예배의 제목을 '내 신앙의 알고리즘을 되찾자.' 로 정해보았다. 알고리즘(algorithm)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일련의 절차나 사고방식을 말한다. 또 다른 의미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제공하는 체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유튜브나 SNS가 나의 시청기록 등을 수집, 분석해서 나의 관심사를 계속 새롭게 노출시켜 주는 것 등을 말한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것들이 나에게 노출되어 지고 결국은 생각도 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신앙이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보이지 않는 마귀는 이러한 채널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생각을 넣어준다. 믿는자들은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한쪽 방향으로 가야한다. 육아로, 직장으로 인해 지친 청년들이 신앙생활을 하기에 어려운것은 사실이나, 하나님께서는 수련회와 같이 곳곳에서 삶의 방향을 잡고 힘을 얻을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 주고 계신다. 수요예배, 금요철야, 주일예배, 목장예배, 새벽말씀, 기도 등등... 나의 마음과 생각을 영적인 것에 맞추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것이 추상적이고 막연할 수 있으나, 영적인것에 초점을 맞추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힘을 주신다.
오늘 베드로전서 주제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불러주셨다는 것이다.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본을 보이셨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두가지로 압축을 해보면 사랑과 겸손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서 철저히 겸손하셨고, 세상 앞에서 철저히 사랑하셨다.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고,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앞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셨다. 우리도 이러한 마음을 갖기를 원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는 16가지로 사람의 성향을 나눈다. 제자들의 MBTI를 추측해 보면 예수님께서 한가지 성향의 제자들만 부르신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향의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리 교회와 같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더 귀하게 여기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우리 청년부가 교회의 크고 작은 일로 정말 너무나 많은 수고를 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고 계신다. 수고한 만큼 충만히 은혜받고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