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성회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이 찬양 가사가 이번 설교의 중심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께서 부르셨을 때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삶의 공허함, 인생의 문제에 대한 공허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즉각 예수를 따랐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는다고 할 때, 이 부르심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둘째는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운명은 의지가 없이 그저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다. 이는 신앙이 아니라 종교다. 부르시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 뜻이 지금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에게 그 부르심은 후회가 없고, 뜻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수의 걸음을 따르라는 것에, 이 말씀이 평안과 안정으로 들릴 수도 있고 부담감으로 들릴 수도 있다. 부담스러운 이유는 내가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가진 자처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은, 버리라던가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삶의 굴레와 고민, 정죄된 삶, 율법에 고착화되어 있는 그 운명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그 건지시려는 명령이 따르라는 명령이었다. 따른다는 것은 그와 함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무언가가 막혀 있는 자들은 있다. 주를 사랑하고 싶지만 우리 안의 무언가가 그것을 빼앗아 가고 차단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께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게 된다. 왜 내 안에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을까? 그것은 내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일을 소망하는 자에게 맡기신다. 우리가 누구나 한 번쯤은 주의 일을 감당하고 싶고, 하나님께 마음껏 사용되고 싶은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 소망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지금 하나님의 어떤 부르심 안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면, 내가 주 앞에서 그렇게 사용받기를 원했던 적은 없었는지,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우리가 삶에서 아플 때, 얽히고 꼬이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 엎드리는 순간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 진실한 마음이 그 순간 발현되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나의 마지막 도움이 누구인지를 그 순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졌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부르심은 마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테스트하는 것과 같다. 아이가 좋아하는 풍선껌을 갖고 있을 때, 아빠가 하나 달라고 하는 것은 풍선껌을 살 수 없어서가 아니다. 주께서 오라고 하시는 것에는 그 능력 많으신 분이 또한 채우시고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주께서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따르는 걸음은 단순히 1년, 5년의 걸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 걸음까지 우리를 이끌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행복으로의 초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 되셨다. 그가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이 부담이 되지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고, 그 첫 사랑을 온전히 소유하여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 넉넉한 행복함과 사랑이 넘치기를 바란다.